전환사채(CB)의 전환가액은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최초 전환가액의 70%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금융위원회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이 시가 변동에 따른 리픽싱 최저한도를 최초 전환가액의 70%로 묶어 뒀기 때문이다. 이 70%는 채권 투자자를 보호하는 선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감수해야 할 희석의 상한선에 가깝다. 전환가액이 30% 내려가면 같은 발행금액으로 찍히는 신주는 30%가 아니라 43% 늘어난다. 하한선의 의미는 이 비대칭에 있다.

리픽싱 하한 70%, 예외는 주주총회로만
리픽싱은 CB 발행 뒤 주가가 떨어지면 미리 정한 조건에 따라 전환가액을 낮추는 약정이다. 주가가 전환가액 아래로 내려가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이유가 사라지므로, 전환가액을 낮춰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주식을 받게 해 주는 장치다. 투자자에게는 하방 방어지만 기존 주주에게는 예고 없이 늘어나는 주식 수다.
규정은 두 겹으로 짜여 있다. 첫째, 시가 하락에 따른 하향 조정은 최초 전환가액의 70%가 바닥이다. 둘째, 그 아래로 내리려면 예외가 필요한데 2024년 12월 1일부터 그 문이 좁아졌다. 종전에는 정관에 근거 조항을 두는 것만으로 70% 미만 조정이 가능했지만, 개정 규정은 정관에 의한 예외 근거를 삭제하고 개별 발행 건마다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했다. 기업 구조조정처럼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도 절차는 동일하다.
같은 개정에서 증자·주식배당으로 전환권 가치가 희석되는 경우에는 희석 효과를 반영한 가액 이상으로만 전환가액을 내릴 수 있게 했고, 사모 CB의 전환가액 산정 기준일은 실제 납입이 이루어지는 날로 못 박았다. 청약일과 납입일 사이 시차를 이용해 기준시가를 낮게 잡던 관행을 차단한 조치다. 콜옵션도 "회사 또는 회사가 지정하는 자"라는 뭉뚱그린 표기 대신 행사자를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바뀌었다.

전환가가 30% 내려가면 주식은 얼마나 늘어나나
숫자로 옮겨야 크기가 잡힌다. 발행주식총수 1,000만주인 회사가 100억원 규모 CB를 최초 전환가액 1만원에 발행했다고 두자. 전환가액이 내려갈 때 전환 가능 주식수는 발행금액 ÷ 전환가액으로 커지고, 기존에 10%(100만주)를 들고 있던 주주의 지분율은 100만주 ÷ (1,000만주 + 전환주식수)로 줄어든다.
| 전환가액(원) | 최초 대비 | 전환주식수(주) | 전환 후 총주식수(주) | 기존 10% 주주의 지분율(%) |
|---|---|---|---|---|
| 10,000 | 100% | 1,000,000 | 11,000,000 | 9.09 |
| 9,000 | 90% | 1,111,111 | 11,111,111 | 9.00 |
| 8,000 | 80% | 1,250,000 | 11,250,000 | 8.89 |
| 7,000 | 70%(하한) | 1,428,571 | 11,428,571 | 8.75 |
| 5,000 | 50%(특별결의 예외) | 2,000,000 | 12,000,000 | 8.33 |
전환가액이 1만원에서 7,000원으로 30% 내려가는 동안 전환주식수는 100만주에서 142만8,571주로 42.9% 증가한다. 하락률과 증가율이 어긋나는 이유는 전환주식수가 전환가액의 역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1÷0.7 = 1.4286, 즉 30% 인하는 곧 43% 증발이다. 지분율 자체는 9.09%에서 8.75%로 0.34%포인트 줄어 작아 보이지만, 이 계산은 CB 한 건만 반영한 결과다. 같은 회사가 CB를 여러 차례 나눠 발행하고 각각 하한까지 리픽싱되면 감소분은 누적된다.
전환가액 30% 인하는 주식 수 43% 증가다 — 리픽싱의 비용은 언제나 전환가액이 아니라 주식 수 쪽에서 나타난다.
주당순이익(EPS)도 같은 분모를 쓴다. 순이익이 100억원으로 고정돼 있다면 전환 전 EPS는 1,000원이지만, 하한까지 리픽싱된 뒤 전량 전환되면 875원으로 12.5% 낮아진다. 유상증자 할인율이 발행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과 달리 리픽싱은 주가가 빠질 때마다 조정 기회가 돌아온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발행 구조에 따른 희석 경로 차이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의 할인율과 희석 계산과 나란히 놓고 보면 대비가 분명해진다.

주가가 다시 오르면 전환가액도 올라간다
리픽싱이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던 시절은 2021년 12월 1일에 끝났다. 시가 하락에 따른 하향 조정이 가능한 사모 CB는 주가가 회복되면 최초 전환가액 범위 안에서 전환가액을 다시 올리도록 의무가 부여됐다. 규정 제5-23조 제3호는 상향 조정 후 전환가액을 발행 당시 전환가액 이내에서 하향 조정 기준가액 이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무에서 이 조항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첫째, 주가가 급락했다가 회복하는 구간에서는 리픽싱 공시가 하향과 상향 양쪽으로 나온다. 하향 공시만 보고 희석 폭을 최대치로 고정해 두면 실제와 어긋난다. 둘째, 상향 한도가 최초 전환가액이므로 주가가 발행 시점보다 높이 올라가도 전환가액은 그 위로 따라가지 않는다. 상승분은 CB 보유자의 몫으로 남는다.
금융위는 2024년 1월 사모 CB 시장 건전성 제고 방안을 내놓으며 사모 CB 관련 불공정거래 40건을 조사 중이고 이 가운데 14건을 마무리해 33명을 검찰에 이첩했다고 밝혔다. 사모 CB 발행 시 납입 1주일 전 주요사항보고서 제출 의무를 둔 것도 이때 정리된 내용이다. 규정 개정의 방향은 일관되게 "발행 조건을 미리, 구체적으로 드러내라"는 쪽이다.

공시에서 무엇을 지켜볼 것인가
CB가 붙어 있는 종목을 들여다볼 때 확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발행 자체보다 조건이 정보다.
- 최초 전환가액과 현재 전환가액의 비율 — 70%에 근접했다면 시가 하락에 따른 추가 하향 여력은 사실상 소진된 상태다.
- 미전환 잔액 ÷ 현재 전환가액 —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신주 수의 상한. 발행주식총수와 나눠 잠재 희석률을 계산한다.
-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70% 미만 예외를 받았는지 — 2024년 12월 이후 발행 건은 정관만으로 예외를 둘 수 없으므로 소집 통지와 결의 안건에서 확인된다.
- 콜옵션 행사자와 행사 가능 수량 — 개정 규정에 따라 행사자, 대가, 처분 계획이 구체적으로 공시된다.
- 상향 조정 공시 유무 — 주가 회복 국면에서 상향 조정이 이뤄졌는지에 따라 잠재 주식수 추정이 달라진다.
- 전환청구 가능 시작일과 보호예수 종료일 — 실제 물량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시점.
여섯 항목 모두 전자공시에서 무료로 확인된다. 잠재 주식수를 손으로 한 번 계산해 두면, 리픽싱 공시가 떴을 때 그 숫자가 이미 반영된 것인지 새로 늘어난 것인지 바로 구분할 수 있다. 발행주식수 변동이 지표에 미치는 경로를 정리한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EPS를 가르는 구조도 같은 계산 틀 위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