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안에 합병하지 못한 스팩이 청산되면 주주가 돌려받는 돈은 주당 2,000원과 소정의 이자다. 공모가가 곧 반환금의 기준선이고, 그 위에서 산 금액은 청산 시나리오에서 그대로 손실로 남는다. 그런데 아시아경제가 정리한 2025년 스팩들의 상장 첫날 평균 장중 고가는 4,067원, 공모가의 203% 수준이었다. 같은 해 스팩 합병 성공률은 38.5%로 전년 68.0%에서 반 토막 났고, 합병에 실패해 상장폐지된 스팩은 24건으로 전년 8건의 세 배가 됐다.

스팩은 사업을 하지 않는 회사다. 오직 비상장 기업과 합칠 목적으로만 상장하고, 정해진 기한 안에 상대를 찾지 못하면 해산한다. 이 구조 때문에 스팩에는 다른 종목에 없는 하한선이 하나 생기는데, 그 하한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오해하면 손실 구간이 통째로 보이지 않는다.

은행 창구 대리석 카운터 위에 놓인 동전 더미와 작은 금고

스팩이 청산되면 주당 얼마가 돌아오나

스팩은 공모로 모은 자금의 90% 이상을 별도로 예치해 둔다. 한국경제교육원 자본시장 안내자료는 규정상 하한이 90%지만 실무에서는 거의 100%를 한국증권금융 등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공모가격은 일반적으로 주당 2,000원으로 정해지고, 3년 안에 어떤 회사와도 합병하지 못하면 스팩은 해산해 주주에게 투자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지급한다.

여기서 두 가지가 갈린다. 첫째, 반환의 기준은 '내가 산 가격'이 아니라 '공모가'다. 예치된 돈은 공모 때 들어온 2,000원 단위의 자금이지, 이후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과는 무관하다. 둘째, 이자는 예치 기관의 금리를 따라가므로 정기예금 수준에서 결정된다. 3년을 채워 청산될 경우 원금에 붙는 이자가 총수익을 좌우할 만큼 크지는 않다.

합병안이 올라왔을 때 반대하는 주주는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현금화할 수도 있다. 다만 이 경로 역시 청구 가격이 공모가 언저리에서 산정되는 구조라, 시장가로 비싸게 매수한 투자자에게는 탈출구가 아니라 손실 확정 버튼에 가깝다.

공모가 위에서 산 만큼이 그대로 손실이 된다

계산은 단순하다. 청산 시 반환금을 2,000원(이자 제외, 보수적 가정)으로 두면 매수단가 P에 대한 손익률은 (2,000 − P) ÷ P다. 여기에 합병 시나리오를 섞으면 기대손익이 나온다. 2025년 합병 성공률 38.5%와, 뉴스톱이 집계한 합병 후 1년 평균 주가 −32.8%를 그대로 대입하면 기대값은 0.385 × P × 0.672 + 0.615 × 2,000이 된다.

매수단가(원)청산 시 손익률(반환 2,000원 가정)합병·청산 혼합 기대손익률
2,0000.0%−12.6%
2,200−9.1%−18.2%
2,500−20.0%−24.9%
3,000−33.3%−33.1%
4,067−50.8%−43.9%

표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마지막 두 줄이다. 매수단가가 3,000원을 넘어서면 청산 손익률과 혼합 기대손익률이 −33% 부근에서 교차하고, 그 위로는 오히려 혼합 기대값이 덜 나빠 보인다. 착시가 아니라 산수의 결과다. 가격이 높아질수록 '원금 반환'이라는 안전판의 상대적 크기가 작아져서, 합병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손실 폭이 비슷해지는 구간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안전판이 있다는 말과 안전판이 유효하다는 말은 다르다.

공모주 배정 단계에서 2,000원에 받은 물량과 상장 이후 시장에서 산 물량은 이렇게 완전히 다른 자산이 된다. 배정 방식에 따라 실제로 손에 쥐는 수량이 어떻게 갈리는지는 균등배정과 비례배정의 계산 구조를 정리한 글에서 따로 다뤘다.

스팩이 보장하는 것은 내 원금이 아니라 공모가다. 둘 사이의 거리가 곧 위험이다.

늦은 밤 아파트 주방 식탁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40대 남성

합병에 성공하면 사정이 달라지나

합병 성사가 곧 수익은 아니다. 뉴스톱 집계에 따르면 합병 상장 이후 평균 주가는 3개월 −9.2%, 1년 −32.8%, 3년 −30.8%로 시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았다. 아시아경제가 인용한 2025년 합병 성공 14개 스팩 역시 상장 9개월 뒤 평균 26.6% 하락했고 낙폭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절차 자체도 빠르지 않다. 스팩 합병은 채권자 보호 절차와 주식매수청구 절차가 붙어 직상장보다 한 달 반가량 더 걸린다. 심사 기간만 놓고 보면 스팩 합병 평균 110일, 코스닥 일반 상장 평균 117일로 큰 차이가 없어, '스팩이 빠른 우회로'라는 통념은 최근 수치에서는 근거가 약하다.

합병 심사 승인 0건이 말하는 것

파이낸셜뉴스가 집계한 스팩 합병 예비심사 승인 건수는 2023년 17건, 2024년 17건, 2025년 9건을 거쳐 2026년에는 8월 초까지 0건이었다. 신청 자체가 줄어든 데다 2025년 7월 시행된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방안'으로 상장 요건이 강화되면서, 코스닥이 우량 기업 중심으로 좁혀진 영향이다.

공급 쪽도 마찬가지다. 신규 스팩 상장은 2022년 45건에서 2025년 25건으로 줄었고 공모금액은 2,704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 감소했다. 반면 2025년 말 기준 합병 상대를 찾지 못한 스팩이 78개 남아 있고 그중 14개는 상장 후 27개월을 넘겼다. 3년 시한을 감안하면 이 물량은 대부분 청산 쪽으로 흘러간다. 실제로 2026년은 6월까지만 17개가 청산돼 전년 같은 기간 12개를 이미 넘어섰다.

상장은 줄고 청산은 늘고 심사 승인은 멈춘 시장에서, 상장 첫날 주가만 공모가의 두 배 이상으로 뛰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상장 첫날 과도한 급등을 막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소비자경보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배경이다.

이른 아침 빈 회의실의 긴 테이블과 의자들

무엇을 지켜볼 것인가

스팩을 판단의 대상으로 삼을 때 확인 가능한 숫자들은 다음과 같다. 전망이 틀리는 조건도 함께 적어 둔다.

  • 상장일과 잔여 기한 — 상장 후 몇 개월이 지났는지. 27개월을 넘긴 스팩은 남은 시간 안에 합병 절차를 마치기 어렵다.
  • 현재가와 2,000원의 거리 — 괴리가 클수록 청산 시나리오에서 손실률이 커진다. 위 표의 계산식을 그대로 대입하면 된다.
  • 예치금 규모와 예치 기관 — 증권신고서에 기재된다. 90%인지 100%에 가까운지가 반환금의 하한을 정한다.
  • 합병 예비심사 승인 건수의 회복 여부 — 2026년 0건이 하반기에도 이어지는지. 승인이 다시 늘면 청산 압력은 완화된다.
  • 합병 상장 후 1년 수익률의 방향 — 지금까지의 −32.8%가 개선되면 합병 성사 시나리오의 기대값 자체가 달라진다. 위 표의 기대손익률은 이 수치가 바뀌면 함께 바뀐다.

식탁 위에서 계산기와 펜을 든 손 클로즈업

참고 자료